"제목 '속죄'는 바로 이 브리오니의 평생에 걸친 속죄를 이른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제대로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가? 또 그런 오해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가? 뒤늦게 깨달은 브리오니는 결국 '글'로써 용서를 구한다. 그런 속죄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을까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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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한강 작가가 맨부커 상을 수상하며 우리나라가 한창 떠들썩 했던 적이 있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도 맨부커 상을 수상한 작가란다. 그의 수많은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작품 중 <속죄>를 읽게 된건 정말이지 단순히 활동하는 한 카페의 '독서 수다방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간 모두가 가지고 살아가는 생각이기도 하다 - <속죄>를 다 읽은 뒤 돌이켜보니 '브리오니'나 '롤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욕망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때는 1935년, 영국의 부르주아 탈리스 가의 막내 브리오니는 고용인의 아들 로비와 자신의 언니 세실리아가 분수대 앞에서 다투는 것 같은 장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브리오니 입장에서 언니가 로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브리오니는 멀리서 자신의 눈으로 분명 '보았다'고 할 법한 사건을 제멋대로 판단해 버린다. 로비가 언니를 괴롭히고 있으며, 자신은 언니를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그 일에 대한 판단은 이후 탈리스 가에 잠시 머무르게 된 사촌 쌍둥이의 가출 사건으로 촉발된 롤라의 성폭행 사건으로 더욱 견고해진다. 즉, 브리오니는 '로비 터너는 성적 욕망이 강한 정신병자다'라고 판정한다. 브리오니의 이 잘못된 판정으로 로비는 징역살이를 하게 되고, 급기야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죄 없는 로비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소설은 이렇게 한 남자의 인생과 한 연인의 사랑을 망쳐버린 철부지 소녀와 그녀가 이후에 속죄하는 - 간호사로 힘들게 생활하고 (사실 그녀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이 일을 담은 소설을 써내는 -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자는 한편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브리오니는 왜 이러한 독단이라고 치부할 만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사실 소설의 초반부에 묘사되는 브리오니는 그리 쉽게 오류를 범할 것 같지 않은, 아주 영민한 아이다. 예컨대, 그녀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자신의 신체에 대해, 타인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실체', 타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존재일까 하는 의구심 등 그녀가 보여주는 사고의 흐름은 정말이지 열 세살 짜리 꼬마가 할 법한 것이 아니다. 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은 나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이 조차도 의심의 눈초리를 하는 브리오니는 마치 데카르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헌데, 저 멀리서 바라본 사건, 심지어 어떤 상황인지 로비와 세실리아의 대화 조차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기만 했던' 그 사건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로비를 '정신병자'로 판정하는 브리오니의 모습은 소설 초반부의 의심하는 소녀와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무엇이 이 소녀를 독단으로 몰고갔을까?


필자는 브리오니의 독단적 판정 이면에 어떤 욕구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먼저, 브리오니는 소설가를 꿈꾸는 소녀였다. 이 소녀가 자신이 끔찍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마주했을 때, 이 사건을 '소설의 재료'로 삼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내비친다. 어쩌면 자신이 이를 매우 잘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즉, 사건의 판단에 있어 '소설가로서 성공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다. (브리오니가 자신의 글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은 본문에서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 외에 '어른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은근히 내보인다. 브리오니가 악몽을 꿀 때, 언니 세실리아가 '돌아와, 괜찮아' 하며 달래주는 모습을 폭행당한 롤라를 위로하는 자신의 모습에 투영시킴으로써, 언니 세실리아, 즉 '어른'과 동일시 한다. 어른으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로비를 경찰에 고발한 뒤 체포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승리감'을 만끽하는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증언이 한갖 어린 아이의 증언이었다면 로비는 체포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롤라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담는 것은 소설에 대한 스포가 될 수 있으니 그녀 역시 '주목 받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가진 인물이라는 코멘트 정도로 넘어가려 한다)


이 두 가지 욕구, '성공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 '어른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곧 타인으로부터 1) 자신의 판단 능력은 믿을만한 것이며, 2)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작업이 가치있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을 기대하는 욕구로 통일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내적 사고에만 탐닉하던 브리오니는 어느 순간 타인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충분히 성찰하지 못했던 것이다. 브리오니의 잘못된 판단은 누군가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음'이라기 보다, 알려고 하는 과정에서 방해를 받아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특히, 자신의 정확하지 않은 - 그녀 스스로도 정확하지 않다고 느낀다 - 판단을 몇 달의 증언에 걸쳐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이 틀렸고, 자신이 증언을 하기에는 어리고 미숙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이러한 브리오니의 욕구는 어쩌면 필자가 가졌던 '독서 수다방에 참여하고 싶다'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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